작년 6월 18일은 참으로 맘이 분주하면서도 뒤숭숭했던날이였다.
마지막 메이센유치원수업을 뒤로하고 은행가서 계좌정리하고 사용하던 핸드폰 해약하고 마지막으로 폐차하는 수속끝내고,,마지막으로 남은 짐들 커다란 가방에 주섬주섬 넣고 있을 시간이 바로 지금 이시간대이다.
이날 예원이는 내가 짐을 다 콘테이너로 보낸후 디카에 차곡차곡 짐 정리를 해가며 삶의 흔적들을 남긴 사진들, 그리고 스튜디오 아리스에서 몰래몰래 찍은 예원이 시치고산 사진과 동영상들을 버튼하나 잘못눌러 나의 센다이 10년생활의 뒷정리 사진을 몇초사이에 다 날려버린 날이기도하다.
어찌나 속상하던지 애를 혼내니까 애도 울고, 나도 아깝고 속상해서 아파트가 떠나가라 같이 엉엉엉 울었던날^^
텅빈 집에서 예원이랑 마지막밤을 자면서 내일부터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하고 마냥 기대도 많았고,,오랫동안 떨어져있었던 가족친지, 친구들과의 재회도 설레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센다이가 제2의 고향이었기에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도 되나~ 또 언제 내가 센다이 땅을 밟을수 있을까~등등 아쉬움도 많았다.
그렇게..뒤척이며 밤을 보내고..
6월 19일..센다이를 떠나는..한국으로 10년만에 귀국하는 날이되었다.
절친하게 지내던 정모네 식구가 날 공항까지 바래다 주고..언니 잘살어, 주애야 잘살아~하며 눈물콧물 흘려가며 헤어진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이 됬다.
어찌보면 너무 일찍 지나간것같고, 어찌보면 참 길기도 했다.
남편의 너무 바쁜 회사생활에 "나의 삶이 무엇인가~"하는 고민도 해보고..참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지만
남편을 회사에 뺏겨버린것같은 아쉬움이 많았다.
저녁마다 같이 맥주한잔 마시는게 취미였던 우리부부가 어느샌가 나혼자 11시쯤 맥주캔 따고 쥐포한마리 구워서 먹고있다보면 남편들어오고..밤되며..심심했다. 한마디로 말해서...술친구가 없어진것같아서ㅡ..ㅡ;;
그러고보니..오창에 정착해서 아직 친구다할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예원이의 내성적인 성격이 날 닮긴 닮았나보다.
그래도..다들...주위에 좋은 사람들이긴하지만..뭐랄까. 꿍짝이 딱 맞는 사람이 없다고할까..오며가며 인사하고 놀러오면 잘해주고..서로 아이들 잘 챙겨주고..그러긴 하지만..예전에 센다이 살때처럼 서로 놀러가고 집에 맛있는것 있으면 서로 챙겨주고 그런..그런식의 밀접한관계(?)의 친구가 아직없어서...쓸쓸하다.
그래도,,하루에 몇번을 전화해서 "뭐해?" "저녁반찬은 뭐드래요?" 하고 물어볼 친정식구가 가까이 있다는점, 맘먹으면 언제든지 서울가서
부모님과 언제든지 같이 있을수 있다는점은 나에겐 행복이다. 물론 예원이에겐 더 할나위 없고!
일본에선 엄마아빠 밖에 모르고 지내던 예원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춘들, 이모, 이모부, 사춘동생이 생긴것도 큰것을 얻은것이고, 그분들에게 예원이가 안겨주는 행복감도 큰 가치가 있는것이라 난 생각한다.
1년사이에
예원이는 많이컸다.
말도 많이 늘었고, 기저귀를 뗐고, 슬슬 친구라는 존재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듯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뭔지도 알고, 가족이 뭔지도 좀 아는것같다.
단순하게 우는감정에서.."감동"을 받아서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요즘 느끼기 시작해서.."엄마 사랑해"하며 훌쩍거린다.
이젠 발 사이즈가 180인다..키도 1미터 2센치정도 되고, 옷은 120사이즈나..5~6호를 입어야 된다.
글자공부에 관심이 많아서 말터지는것과 비슷한 시기에 글자공부도 시작했다. 말이 늦은게 정답일라나???
생각하는 폭도 넓어지고, 이젠 농담따먹기도 우습게 할줄알고^^;; 죽음이 뭔지 조금 이해한다.
그렇다..우리가 귀국한후 난 외할머니와 시어머니를 여의었다.
왜 우리가 귀국하니까 이렇게 가족이 떠나나..싶어서 좀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는데, 우리엄마왈!
"나이가 들어서..이제 다들 떠날시기가 되서 떠나는거야. 너희 들어왔다고 떠나는거 아냐~"
음..그래 우리나이가 되면 이젠 주위에서 막 결혼하고 애가 돐이고...이런것보단..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대..라는 말이 더 말이 들리는건 사실인것같다..
그래도..가족을 잃는다는건..참으로 가슴이 아프고..쓰리다...
여행도 많이한것같다. 우리 엄마아빠, 나 예원이..이렇게 4명이서 다닌 여행이 거의 주가 되지만, 이또한 우리가 한국에 살기때문에 가능한일..10년동안 못한 여행을 1년동안 아니 앞으로도 계속 자주 다니고 싶다. 이래서..우리 예원이는 여행이 뭔지도 안다. 집에서 놀다가도 심심하며 "엄마 여행갈까?" 풋!
남편의 바쁜회사생활속에서도 틈틈히 가족들과 가까운데 나들이를 간다던가, 외식을 한다던가..한가롭게 세식구가 조용히 보내는 날..사실 이런날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많지 않았기에 더 소중하고 귀중한 시간들이였다. 그래도 승진하고 나선 좀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작년보단 좀더 요즘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지않나싶다.
사회적으로는,,,서해안에 기름유출이 되어 온국민이 기름을 닦아대고, 대통령이 바뀌었고,,남대문이 불타없어졌고,,두아이가 유괴가 되어서 아이가진 부모로썬 정말 세상이 더 무서워졌고, 물가가 일본보다 더 높음을 느끼고,,특별히...세상이 더 좋아졌구나~를 별로 못느끼게 되어서 좀 씁슬하다.
아직 못해본건..한국가면 친구들과 자주 만나봐야지~했는데, 무슨...대학교때 친구들과는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다.
다들 애들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하늘에 별따기. 더우면 덥다고 못만나, 추우면 춥다고 못만나, 애가 어디 다녀, 애가 아퍼, 임신을 했어..등등..참으로 만나기 힘들다. 올여름엔 꼭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야지.
친한 이글루 이웃분들도 꼭 한국가면 만나야지..했는데..이것도 아직 못하고있다.
이유는 위의 이유랑 거의 같다. 사는곳도 다 여기저기 떨어져있고, 직장다니고, 애 있고, 그러니까..또 나 당신 보고싶소, 그러니까 우리 만나보세! 하고 말할 용기도 없고^^;;
서울에 가서 명동거리한번 신나게 활보하고 다니고싶다. 쇼핑을 하고 싶은것보다는 내가 없는 10년동안 명동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나 좀 보고싶다.
1년이 되었는데도,,,밖에보단 집안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인지...한국이 아직도 내겐 외국같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처음들어보는 상표도 많고, 처음들어보는 장소도 많고, 처음들어보는 새로운 시스템도 많고,,아직 낯설다.
어쨌던..다사다난했던 1년이었다. 좋은일도 나쁜일도 가슴아팠던일도, 가슴뿌듯했던 일도 많았던 1년.
어찌보면 참으로 행복했던 1년이었다. 들뜬 가슴을 안고 귀국했고 그 기대는 날 저버리지 않았던것같다.
이렇게 소중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공유할수있었고, 앞으로도 같이 공유하며 살아갈수있다는건 참으로 행복이다.
지금 나의 자리는 아내로써 엄마로써 최선을 다하는길인것같다.
1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1년같이..앞으로도 열심히 잘살아야지. 1년의 흔적을 사진 100장으로 정리하기엔 너무나 힘든작업이었다.
하나하나 다 의미있고 소중한 추억의 사진들인데 이걸 빼자니 아깝고 저걸빼자니 저것도 아깝고..
그래도 골라골라 억지로 100장으로 1년을 정리해봤다.